일본은 왜 세계 3위 반도체 장비 업체를 버렸나
1. 세계 3위 장비 기업 도쿄일렉트론
반도체 공정에서 한국의 삼성전자, 대만의 TSMC, 미국의 인텔 등에 비해 매우 후진적인 기술력에 머물고 있는 일본이지만, 여전히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도 있습니다
바로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분야인데, 이 중 일본이 최근 세계 3위 반도체 장비 업체를 포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 1위는 미국의 어플라이드 머터리얼즈(AMAT)이고, 2위는 네덜란드의 ASML이 언급됩니다
그리고 이 뒤를 잇는 것이 일본의 도쿄일렉트론입니다
그나마 반도체 산업에서 일본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이 D램에서의 키옥시아와 도쿄일렉트론인데, 일본 정부는 도쿄일렉트론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되는 정책을 내놨습니다
일본이 내놓은 정책은 바로 미국의 대 중국 반도체 수출규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일본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액은 지난해 기준 10조원 수준이었는데, 이는 전체 수출액의 무려 33%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여기에 도쿄일렉트론이 5조원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대 중국 수출 규제는 사실상 도쿄일렉트론의 문을 닫으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도쿄일렉트론을 포기하면서까지 중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합류한 것일까요
2. 40나노의 일본, 2나노 미래를 꿈꾸다
현재 일본의 반도체 기술은 40나노에 멈춰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TSMC는 3나노 기술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고, 한발 더 나아가 2나노, 1.4나노까지 공정을 고도화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공정이 고도화되면 후발주자들이 이를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됩니다
반도체 공정의 특성 상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이제와서 40나노에서 한 발씩 기술을 올린다고 해도 기존의 반도체 강자들이 점령한 시장을 빼앗아 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승부수를 던졌는데, 바로 미국의 편에 더욱 철저하게 붙어서 기술을 받겠다는 계획입니다
지난해 12월 미국 IBM은 차세대 2나노 반도체 기술을 일본에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술은 과거 삼성전자와 IBM이 함께 개발한 것으로, 현재 그 누구도 2나노 이하 반도체를 양산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여기에 소니와 도요타, 소프트뱅크, 키옥시아 등 일본을 대표하는 8개 대기업이 힘을 합쳐 반도체 신생 기업 라피더스를 만들었습니다
라피더스는 일본의 미래를 짊어졌다고 평가받는 기업으로,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이 기업의 성공에 달려있습니다
일본은 도쿄일렉트론을 내주는 대가로 미국의 첨단 반도체 공정에 관한 기술 이전을 약속받았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과 대만이 주도하는 기존 공급망에서 다시 한번 일본이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일본은 반도체 시장을 장악했지만, 미국의 견제로 반도체 산업을 한국과 대만에 내줘야만 했습니다
중국의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일본은 다시 한번 반도체 왕국의 재건을 꿈꾸고 있습니다
일본이 기대하는 것은 중국의 대만 침공입니다
일본의 국책연구기관인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의 연구평가위원인 미나미가와는 일본이 다시 한번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일본과 미국, 대만의 동맹입니다
그는 “TSMC는 현재 구마모토에 첫 공장을 짓고 있고, 조만간 두번째 공장 검토에 들어간다”며 “장기적으론 일본과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단계까지 갈 것이며, 진정한 동맹은 그때부터”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일본은 반도체 장비에선 세계 점유율 35%로, 미국(40%)에 이은 2위이고, 반도체 재료는 55%를 차지하는 세계 1위”라며 “일본의 장비·재료 회사들이 삼성전자보다 TSMC를 우선해 기술 개발에 협력하면 서로 윈윈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약점은 반도체 공정 엔지니어가 턱없이 적은 것인데, TSMC의 반도체 공장에서 일본 반도체 인재들이 육성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기대를 하는 것은 미국이 일본을 오랜 기간 동안 아시아의 안보 파트너로 여겼다는 이유입니다
반도체가 단순히 경제 문제를 넘어 안보 문제로 넘어온 만큼, 미국이 일본을 다시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반도체 산업에서도 한국과 대만을 대신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미나미가와는 “만에 하나 중국의 대만 침공과 같은 유사 사태가 발생하면, 일본은 안보 보장 측면에서 바로 대만을 도울 것이며, 대만으로선 그런 일본과 반도체 협력을 하는 게 맞는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대만의 TSMC와 미국의 IBM이 일본에 와서, 일본 기업과 공동 프로젝트를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일본이 TSMC를 흡수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겁니다
3. 일본의 기대는 현실이 될까
일본의 기대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중국의 대만 침공이 현실화되야 하며, 그 전에 일본에 TSMC의 첨단 공정을 적용한 공장이 지어지고 운영이 되야 합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일본 정부와 다른 생각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반도체 장비 기업들은 일본의 부활을 기대하기보다는, 한국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만이 침공을 당할 경우, 자연스럽게 일본이 아닌 한국에 첨단 반도체 주문이 몰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일본 반도체 장비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반도체 제조공정이 날로 복잡해지는데 맞춰 주요 고객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의 관계를 보다 밀착시키기 위해서입니다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고쿠사이일렉트릭은 올해 한국의 평택 공장을 확장한다고 밝혔습니다
수십억엔을 투자해 클린룸을 증설하는 등 본격적인 개발 기능을 갖출 계획입니다
고쿠사이일렉트릭은 웨이퍼를 에칭 작업으로부터 보호하는 장비(성막장비)를 만드는 기업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고객사입니디ㅏ
고쿠사이의 R&D센터는 일본 도야마현에 있는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한국 진출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매번 웨이퍼를 들고 한일 양국을 왔다갔다 하는 것도 큰 부담인데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일본 정부가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코쿠사이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근처에 있는 평택 공장을 확장하는 방안을 선택한 겁니다
또다른 기업은 히타치하이테크입니다
히타치의 주요 R&D 시설은 일본 이바라키현과 야마구치현에 있는데, 해외 고객이 반도체 웨이퍼를 들여와 장치를 테스트하려면 몇 주가 걸렸습니다
민감한 정보를 담고 있는 웨이퍼를 일본으로 들여오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 추가로 거점을 건설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40나노에서 2나노로 건너뛴다는 일본의 생각은 망상에 가깝다
국내 한 반도체 장비 업체의 고위 관계자는 일본의 계획에 대해서 불가능한 일을 꿈꾸고 있다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기술 구현을 위한 엔지니어와 장비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 TSMC, 인텔 등 파운드리 업체들이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반도체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임금으로 유명한 불모지 일본으로 갈 사람이 누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쇠토하면서 반도체 관련 인구 연력이 줄어들었는데, 일본어가 가능한 고급 인력 확보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과연 일본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요? 과거의 영광에 둘러쌓여 현실을 외면하는 한 쉽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