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대격변이 이뤄지고 있다
1. CATL의 자금줄에 문제가 생겼다
로이터통신은 14일 글로벌 배터리 시장 1위인 중국 CAT의 해외주식예탁증서(GDR) 발행이 지연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초 CATL은 GDR 발행으로 오는 5월을 목표로 스위스 취리히 증권거래소에 상장해 최소 50억달러, 약 6조5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고자 했습니다
CATL은 이와 관련해 올해 1월 말이면 중국 금융 당국의 승인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당국이 GDR 대규모 발행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 절차가 늦어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습니다
중국 금융 당국은 CATL의 추가 자금 조달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CATL은 지난해 6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450억위안 약 8조50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CATL은 조달한 자금을 중국 4개 도시에 위치한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과 연구개발 등을 지원하는 데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CATL이 GDR 발행을 통한 50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달한다면 지금까지 스위스에 상장한 중국 기업 중 최대 규모입니다
로이터통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선두업체 CATL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 지 1주일 만에 이 같은 지연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시 주석의 해당 발언은 첨단 분야에 대한 중국의 이례적인 공개 개입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6일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민건·공상련 소속 위원 토론회에서 쩡위췬 CATL 회장과 만나 ‘CATL의 선전이 기쁘기도 하지만, 걱정스럽기도 하다’면서, ‘나중에 이런 호황이 끝나 흐지부지 사라지는 건 아닌지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에는 급성장한 중국 배터리 산업이 한 때의 붐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겨 있습니다
CATL의 GDR 발행 승인 지연은 CATL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생산 능력을 확대해 과잉 생산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최근 중국 기업들은 미국·영국 등이 중국 기업에 별도 회계감사 자료를 요구하는 등 기업공개(IPO) 문턱을 높이자 스위스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시장정보업체 리피니티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개 중국 기업이 스위스 증시에 상장해 36억6000만달러, 약 4조8000억원을 조달했습니다
2. 한국 배터리 업계에 호재가 될까
이번 자금 유통이 막힌 것은 한국 배터리 업계에게는 호재로 작용될 수 있습니다
중국 배터리 산업은 그동안 가파른 양적 성장을 보였지만, 상대적으로 질적 수준이 높지 않습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용 배터리 출하량 기준으로 CATL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입니다
다만 이 통계에서 중국을 제외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중국을 뺀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점유율 1위는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로 24.4%를 차지했고, CATL은 24.1%로 2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중국 배터리 산업은 기술력의 척도인 특허 수에서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계 배터리 시장의 양강구도를 형성 중인 한국에 매우 크게 뒤쳐져있습니다
CATL의 배터리 특허는 약 4000건에 불과한데, LG에너지솔루션은 약 2만4000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부족한 기술력을 보조금으로 메꾸는 전략을 펼쳤고, 이는 중국 시장에서 애국 마케팅과 결합되면서 매우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중국 전기차 기업들은 빠르게 성장했고, 이와 함께 CATL 같은 기업들도 성장세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이어 유럽이 중국산 제품에 대해 장벽을 치면서 이런 방식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포드를 통한 우회 진입은 공화당의 반대로 인해 사실상 막혔고, 유럽에서는 자금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여기에 한국 배터리 3사가 중국이 자랑하는 LFP 배터리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중국산 배터리의 장점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CATL은 엄청난 수익을 냈는데, LFP 배터리가 핵심에 있었습니다
LFP 배터리는 제조원가가 저렴하고 니켈, 코발트, 망간을 사용하는 NCM 배터리와 비교해 안정성이 높지만, NCM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떨어지고 주행거리가 짧은 것이 한계로 지적돼왔습니다
한국 업체들은 지금까지 NCM 배터리에 주목해 왔지만,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LFP 배터리를 선호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기술 진화로 LFP의 에너지 밀도가 향상된 데다 인플레이션 여파로 가격 경쟁력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업계가 기술력이 없어서 LFP 제품을 개발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면서, LFP 등 다양한 배터리에 대한 고객사들의 요구에 발맞춰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배터리 3사는 본격적으로 LFP 배터리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SK온은 이달 15∼1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배터리산업 전시회인 '인터배터리 2023'에서 LFP 시제품을 선보였습니다
한국 배터리 3사 가운데 전기차용 LFP 배터리를 만든 건 SK온이 처음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이번 전시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용 LFP 배터리를 처음 공개했고, 향후 전기차용 배터리 등으로 LFP 적용 범위를 넓혀나갈 계획입니다
삼성SDI도 LPF 개발 계획을 밝혔습니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은 지난 15일 정기 주주총회 직후 기자들에게 LFP도 중요한 플랫폼 중 하나로 생각한다며, 향후 사업의 다양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LFP 배터리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3. 테슬라도 중국 대신 한국 선택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회사인 테슬라가 중국 BYD의 배터리를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BYD LFP 배터리의 잇단 화재 사고로 품질 이슈가 불거진 데 따른 겁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테슬라 요청에 따라 전기차용 LFP 배터리를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연스럽게 중국의 점유율은 줄어들고 한국의 점유율은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모델 3 스탠더드 등에 들어가는 배터리 공급 계약이 만료된 직후, BYD에 추가 공급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테슬라는 지난해 처음으로 유럽용 저가형 트림에 사용하기 위해 BYD에서 10GWh 배터리를 공급받았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자사 배터리를 적용한 BYD의 전기차 화재 사고가 수차례 이어지며 품질 문제가 발생하자 중국산 배터리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입니다
BYD는 자체 개발한 블레이드 배터리가 열관리 효율이 뛰어나 화재 위험이 작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BYD의 설명과 달리 사고가 잦아지자 테슬라는 BYD 배터리를 쓸 이유가 없어진 것이라며, BYD가 유럽 인도 동남아시아 등에 전기차를 만들어 수출하는 등 테슬라와 직접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다는 점도 계약 종료의 이유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테슬라의 LG에너지솔루션 의존은 더 강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재 테슬라는 유럽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CATL, 북미에선 파나소닉 제품을 쓰고 있습니다
BYD의 빈자리를 기존 업체가 채울 가능성이 큰데,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고려하면 CATL을 선택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LG에너지솔루션은 테슬라 요청으로 전기차용 LFP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개발 막바지 단계인 에너지저장장치용 LFP를 기반으로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테슬라는 소형 전기차 수요 증가에 따라 2만5000달러(약 3000만원)대 전기차 모델 2를 개발 중인데, 여기에 들어갈 LFP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중국 업체의 현지 진출이 사실상 제한된 데다 파나소닉은 증설에 소극적이어서 LG에너지솔루션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분석입니다
유럽도 14일 핵심원자재법을 공개하며 배터리의 역내 생산을 강제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중국 주요 배터리회사 가운데 독일에 공장을 둔 CATL 외에 유럽에 현지 공장을 보유한 업체는 없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폴란드공장 외에 테슬라에 납품할 유럽 원통형 배터리 생산 거점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가 ‘4680 원통형 배터리’ 생산 확대를 위해 엘앤에프 등으로부터의 양극재 납품을 늘리고 있지만, 필요한 배터리를 모두 자체 생산할 수는 없다면서, 생산 중인 4680 배터리 역시 에너지 밀도가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어서 LG에너지솔루션에서 공급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4. 중국의 반격은 희토류?
희토류는 이름에 있는 ‘희소하다’는 뜻과 달리 지구 위에 널리 분포한 광물입니다
다만 제련·분리·정제가 어렵고, 처리 과정에서 환경 오염 문제로 생산국이 제한돼 희소가치가 큽니다
희토류는 반도체·스마트폰과 전기차 배터리부터 레이저, 전투기까지 첨단 산업에 폭넓게 사용되기 때문에 ‘산업의 비타민’이라고 불립니다
중국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임하던 2019년 5월 미국과 무역 전쟁이 최고조에 달하자 ‘희토류 무기화’를 공식 언급했습니다
지난 2021년엔 희토류 국유기업 3곳과 국가연구소 2곳을 통합한 ‘중국희토그룹’을 출범시켰고, 희토류 생산량의 70%를 한 회사로 몰아 시장지배력을 높였습니다
중국희토그룹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중국의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를 통해 희토류 합금의 일종인 사마륨 코발트를 추출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뿐이다. 미국이 전투기에 중국산 희토류를 배제할 수 있느냐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자체적으로 자원 확보에 나섰고, 다행히 중국 의존도를 꾸준히 줄여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중국의 공격이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큰 주의가 필요합니다
강력한 적을 쓰러뜨렸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배터리 점유율에서 한국이 중국을 넘어선다고 해도 직후 엄청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